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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靑巖(청암)’의 숲

[기고] ‘靑巖(청암)’의 숲

  • 기자명 STN
  • 입력 2022.10.12 17:53
  • 수정 2022.10.1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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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 홍(올드 포레스트)

 그것은 마치 우연히 낯선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한 오래된 책방을 발견한 것 같은 반가움이었다. 처음 여의도 외교 빌딩이라는 곳에 미술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 그런 곳에도 미술관이 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한 분의 작가만을 위한 상설 미술관이라는 이야기에 궁금증이 더해만 갔다. 게다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전시된 그림을 그리신 분이라고 하니 그림의 무게에 기가 눌려 제대로 감상이라도 될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청암미술관 입구
청암미술관 입구

 

  여의도 외교 빌딩에 도착하니 그곳은 전에 수도 없이 지나쳤던 건물이었고, 자세히 보니 건물 현관 오른편에 한자로 ‘靑巖 韓相奉 美術館’이라고 쓰인 검은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일부러 손가락으로 가리켜 소리 내어 읽어주지 않는다면 결코 눈에 들것 같지 않은 이상한 현판이었다. 그곳이 오래된 건물이라는 것은 얼핏 보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외관과 그런데도 여기저기 손보고 깨끗하게 관리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건물만큼 오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에 내리니 회색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공간이 나오고 현관에서 본 것과 같은 눈에 절대 띄지 않는 이상한 현판만이 이곳이 ‘청암 한상봉 미술관’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마치 절대 알려 주고 싶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굳이 찾아왔으니 어쩔 수 없이 ‘여기’라고 말해주는 이방인을 배척하는 원주민처럼...

  굳게 닫혀 있는 철문을 열자 그곳에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미술관이 있었다. 미리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림을 대충 흩어보고 간 터라 눈에 익숙한 그림들이 전시돼 있었고, 미술관 한쪽 편은 건물의 주인인 것 같은 회장실과 관리실이 있었다. 건물의 맨 꼭대기 층을 건물주가 쓰던 예전 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도 신기했고, 세 놓기 좋은 금싸라기 땅에 누구도 들어올 것 같지 않은 오직 한 작가만을 위한 미술관이 존재하는 것도 의아했다. 

청암 미술관 내부 전경
청암 미술관 내부 전경

 

  처음 눈에 들어온 작품은 문을 열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전시된 <지리산 철쭉>이라는 작품이었다. 바로 정면에 있지만 그림 전체의 구도나 철쭉과 노을의 화려한 색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사방 벽면을 에워싸듯 그림들이

  전시되어있는데, 일반적인 미술관 보다는 촘촘하게 그림을 걸어 놓은 것이나 혹은 벽면의 인테리어 마감, 조명까지도 일반적인 미술관과는 다른 무엇인가 계획성 있게 만들어진 것이 아닌. 부족한 느낌이 드는 그런데도 그 부족한 무엇인가가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은 공기가 멈추어져 있어서 눈을 감고 있어도 그림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 후에 회장실 방문이 열리면서 먼저 와 있던 일행이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회장실은 중후한 느낌이 드는 오래된 책상과 의자들이 보기 좋게 배치되어 있었고, 벽면에는 방의 주인인 듯 중년의 남성이 외교 훈장을 화려하게 가슴에 달고 찍은 사진과 사업의 성공을 알려 주는 각종 트로피가 즐비했다. 책상의 뒤쪽 벽은 청암 선생님의 작품으로 보이는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모든 가구와 장식품들이 고가의 제품이었지만, 오래되고 낡은 느낌이 방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트로피를 가득 채운 장식장 앞으로 진한 갈색의 SUV 차량 같은 거대한 가죽 소파가 있었고, 그곳에 청암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처음 뵈어 어색하게 인사드리는 나에게 선생님은 어린아이 같은 100%의 반가움을 담은 웃음으로 맞이해 주셨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 1퍼센트의 부정도 실리지 않은 100%의 반가움이었다. 나중에도 여러 차례 선생님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어쩜 저리도 순수함을 지니실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러한 선생님의 감성이 작품에 실리는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걸려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선생님은 말씀을 이어 나가셨다.

 “이 방은 ‘조 규’회장님 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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